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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무상사 亂無常思

교감유감

by 한셩랑군 2009. 7. 26.

바로 며칠 전 새벽 0시 30분을 조금 넘는 시각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D군이 만취하여 할말이 있다며
들어왔다. 얘기인 즉 교감연수를 받게 하여준다는 약조를 하였음에도
그 약조를 지금까지 지키지 않은 이유를 따지러 왔다는 것이다.
 
참고로 D군은 지방 모 고등학교의 *어교사이며 난 그 고등학교가
속해있는 학교법인의 전 이사였다. D군의 말에 의하면 내가
그 학원에 이사로 있을 때 D군에게 교감자격연수를 받게 하겠노라는
굳은 약조를 하여서 그 후 D군은 그때까지 방만하게 생활 하였던
교사생활을 접고 그야말로 열심히 학교를 위하여 지난 1년간 분골쇄신
하였다는 것이었다.
 
학교운영위원회 선거에도 나가 학운위 위원으로 당선 되어 동료 교사
및 학부모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연구부장을 맡아 열심히 노력하여 학교의
명예도 드높였고 특히 우울증으로 정신이상이 되신 노모를 년 평균
700만원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 하면서 까지 4년 넘게 모신 대한민국의
효자 인 본인을 무슨 이유로 아직까지 교감연수를 받게 해주지 않느냐
라며 그 이유를 설명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D군은 갑자기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화를 내면서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너에게 받은 값싼 은혜는
다음 생에 갚으마.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겠다. 앞으로는 교육은 않고
정치를 하겠다.’ 라고 하면서 새벽 2시 40분쯤 자리를 떴다.
 
D군이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신뢰……’
 
D군은 나의 *학교 동기동창으로 나의 추천으로 현 학원에
근무하게 되었고 현재 수천만 원이 넘는 금전을 10년넘게 무이자로
기약 없이 나에게 빌려 쓰고 있는 상태. D군이 내게 말한 ‘값싼 은혜의
다음 생 운운’ 등 은 아마 이 빌려간 돈을 이번 생에는 갚지 않겠다는 뜻을
*어교사 답게 문학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D군이 돌아간 뒤 그가 남기고 간 말들은 곰곰이 반추해 보니
결국 D군은 법인에서 교감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그때까지의 방만한
자세를 버리고 지난 1년간 혼신을 다하여 학교를 위해 견마지로를
아까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없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
 
나는 D군에게 교감을 약속한 일도 없었을 뿐더러
현재 그 학원의 이사도 아니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지만 아무튼
D군에겐 40년 지기를 과감히 버릴 정도로 엄청난 일 이었음이
틀림 없는 것 같았다.
 
다음날 D군은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하나 올렸다.

중국 춘추시대에 우정이 깊은 관중과 포숙아라는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양공이라는 임금의 신하였는데 이 양공은 매우 난폭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조카인 공손무지라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포숙아는 양공의 첫째 왕자인 소백을 따랐고 관중은 둘째 왕자 규를 따라
각각 다른 나라로 망명을 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공손무지가 죽게 되어 양공의 두 왕자가 다시 나라를 찾게
되었습니다.
두 왕자는 돌아오자마자 왕의 자리를 다투었는데 결국 첫째왕자인 소백이 왕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둘째왕자를 따른 관중은 잡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때
포숙아는 왕에게 간곡히 탄원하여 목숨을 구하고 후에 재상에까지 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관중에게 '어떻게 해서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내 친구 포숙아의 덕분이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포숙아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남는 이익금을 좀 많이
가졌는데도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욕심을 부린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내가 포숙아를 위해 한다는 일이 서툴러서 오히려 포숙아를 당황하게
한 적이 있었으나 그는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음을 알고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내가 세 번 벼슬에 올라 쫓겨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포숙아는 내가 운이
없음을 알고 내게 무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내가 싸움터에서 싸움에
졌을 때 도망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포숙아는 나이 많으신 어머님 때문임을 알고
내게 비겁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어버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내 친구 포숙아지요.”


그때부터 마음으로 깊이 사귀는 친구의 사이를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이라 일컫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바라기 보다는 여러분이 관중과 포숙아처럼 좋은 친구가 되십시요.

위 이야기를 읽고 나는 D군의 평소 바램이 무었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떠한 실수와 그릇된 언행을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포용해 주고
오히려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친구가 필요 했던 것 이었다. 
  
인사청탁을 수 없이 받아야 할 입장이고 보니 늦은 저녁 또는
이른 새벽 할 것 없이 만취하여  갑자기 방문을 불쑥 열고 들어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절거리다 갑자기 화를 내며 횡 가버리는 D군 같은 이들을 비롯, 
년말이나 정월 초하루에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많은 이들에게서 느끼는 공통된 점은
자신의 뜻한 바를 관철하기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둘째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로 생각 한다는 것, 셋째 자신의 합리화에 뛰어난 재능이
있으며 모든 부정적인 부분은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귀재 라는 것 등이며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거나 있었던 이들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였다.

교감연수가 뭐길래 40년 지기마저 헌신짝 버리듯 외면하는 이런 형태가
우리사회의 본 모습은 아니기를 빌어볼 뿐이다.

한셩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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